글/일상 12

11/17

강의 시간에 글을 쓴다. 말이 안 되는 글이다. 숙취 때문에 머리가 조금 아프다. 듣지 않아도 되는 강의다. 머리가 아픈 것이 맞을까. 아니 좀 답답하다. 냄새 때문에. 알바비를 전부 술에 들이 붇는다. 나와 소원해진 형은 아예 나와의 관계를 끊어버리려고 하는 가 보다. 버려지는 건 익숙하지만 익숙하다고 해서 아프지 않은 적은 없었다. 나와 할 말이 없어서 끊어져 버린다는 것. 나와 같이 얘기하면서 웃었던 적이 몇 번이나 있을까. 내 진정한 친구들도 내 자존감을 깎아 먹을 때 말고는 웃었던 적이 몇 번이나 있었을까. 필력이 쓰레기 같다고 말하는 것도 이젠 자기 반복이다. 억지로 쓴다. 향수의 잔향과 옷의 눅눅한 냄새. 어젯밤 늦은 수음의 냄새와 맥주의 알딸딸한 냄새가 난다. 배려하면서 쓴다는 것은 무엇일..

글/일상 2022.11.17

10/4

진도를 놓친 교양수업과 어떻게 해야할지 모르겠는 중간고사 기간. 매일 떨어지는 것 같은 숨을 간신히 붙잡는다. 그러면 그 숨은 내 머릿속으로 고요하게 맺힌다. 다른 표현을 쓰긴 쓰는건지 모르겠다. 원래 실낱같던 창의력마저도 전두엽이 썩으면서 이젠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고요하게 산책하던 본가에 다시 가고 싶다. 외로울 때 들리던 아버지의 코골이 소리가 그립다. 낮에 같은 방에, 맨바닥 위에 누워 보던 홍상수의 영화들도 그립다. 당신과 내 호흡이 일치하는 순간이 그립다. 내가 그 호흡을 따라가려고 숨을 참던 시간도 그립다. 그런데 이 그리움은 그저 외로움 때문에 태어났다. 당신을 그만큼 사랑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죄책감이 글에 살짝 묻는다. 번진다. 차라리 환각제가 필요하다. LSD가 필요하다. 졸피뎀..

글/일상 2022.10.04

9/5

내 뇌 속에 가지런히 모아둔다. 썩은 생각들을. 곧 죽을 생각들을. 끊임없이 하루를 고민하고 하루를 죽어내는 니힐리스트의 기계같은 삶을 그대로 적어둔다. 최승자를 동경하면서도 그렇게 살지 않을 것을 기대한다. ‘기대’를 한다. 묶여있는 풍선과 같이 되지 않기를. 훨훨 날아가기를. 쓰레기 같은 글만 계속해서 나온다. 정신을 차리고 보면 우습기만 할 글만 지금 내리는 비처럼 주륵주륵 나온다.

글/일상 2022.09.08

6/28

바위를 반 쯤 들었다. 바위에서 행복한 냄새가 난다. 이끼는 궁서체다. 풍선은 시동을 건다. 바위는 위로 향한다. 구름이 말랐다. 파란 하늘에 가뭄이 들었다. 파란 열정. 고양이들이 자살하는 이유가 뭘까? 바퀴벌레와 쥐는 인류의 오래된 친구다. 각진 냄새가 난다. 향기로운 심장. 이리로 와, 부르자 그가 날개를 펴고 날아갔다. 나는 손을 흔들어줬다. 부자 일수록 섹스를 못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가. 천장으로 떨어진다. 물 반 모금을 꿀꺽꿀꺽 마셨다 ———————————————————————— 오랜만에 밤을 샜다. 고양감 때문일까 슬픔 때문일까. 노래를 끈다. 새벽 특유의 새소리가 들린다. 유리창이 밝아온다. 이때 나와서 피는 담배는 몽롱하고 약간 환상적인 느낌이다. 매미소리 밤을 새고나면 꼭 어딘가로 떠..

글/일상 2022.06.28

의사 선생님 귀하

모든 방과 복도에 불이 꺼졌다. 입원실 옆에 있는 플라스틱 의자에 앉아 글을 쓴다. 최대한 분노 없이 쓰려고 노력할 예정이다. 몽롱함과 흥분으로 글이 잘 써지지 않는다. 그래도 쓴다. 글이 뒤죽박죽이지만 당신이 제대로 읽어줬으면 좋겠다. 취침 전 약을 먹고 눕고 40분 동안 눈을 감고 있다가, 멍청하게도 그제야 그렇게 요구했던 졸피뎀을 간호사가 약봉지에 넣는다고 말하고 넣지 않았다는 것을 깨달았고(어제도 그랬다), 네 번을 필요하다고, 잠에 못 든다고 부탁해도 졸피뎀을 약봉지에 넣지 않은 성심병원 간호사라는 집단 중 한 명에게 전화해서, 이제야 졸피뎀을 받아먹었다. 입원하고 오늘까지 새벽 4시 이전에 잔 적이 없다. 그러니까 3일 동안 세로토닌이 제대로 돌지 않은 것이다. (그래서 폐쇄 병동에서는 옆자리..

글/일상 2022.06.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