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방과 복도에 불이 꺼졌다. 입원실 옆에 있는 플라스틱 의자에 앉아 글을 쓴다. 최대한 분노 없이 쓰려고 노력할 예정이다. 몽롱함과 흥분으로 글이 잘 써지지 않는다. 그래도 쓴다. 글이 뒤죽박죽이지만 당신이 제대로 읽어줬으면 좋겠다.
취침 전 약을 먹고 눕고 40분 동안 눈을 감고 있다가, 멍청하게도 그제야 그렇게 요구했던 졸피뎀을 간호사가 약봉지에 넣는다고 말하고 넣지 않았다는 것을 깨달았고(어제도 그랬다), 네 번을 필요하다고, 잠에 못 든다고 부탁해도 졸피뎀을 약봉지에 넣지 않은 성심병원 간호사라는 집단 중 한 명에게 전화해서, 이제야 졸피뎀을 받아먹었다. 입원하고 오늘까지 새벽 4시 이전에 잔 적이 없다. 그러니까 3일 동안 세로토닌이 제대로 돌지 않은 것이다. (그래서 폐쇄 병동에서는 옆자리에 젊은 환자가 수음하는 모습을 봤다. 바로 고개를 돌렸지만, 내가 깨어있는 걸 알면서도 그는 음경을 위아래로 흔들었다. 질퍽질퍽 소리가 10분 동안 들렸다, 생생하게 들었다) 오늘도 40분 동안 약효가 다 떨어지고 나서야 졸피뎀을 먹어서 잠들지 못할 것이다.
그를 만난 지가 4년이다. 우리-라고 말하지 않겠다. 그와 나의 교류 상태는 내 생각으론 꽤 괜찮았다. 아니, 나는 그의 가식적인 반응을 내 나름의 예민함으로 알아챘을지도 모르겠다. 사실은 알아챘다. 상담 시간을 늘어뜨리거나, 같은 말을 반복하게 하거나 그리고 거기에 대한 반응(안쓰럽다는 감정의 제스처)은 어딘지 어색하다. 늙고 우둔한 사람에게는 잘 통했을 것 같다. 사실 나도 그게 가식이라는 것을 확신까지 하진 못했다. 그때 그 상담 시간을 늘어뜨린 게 치료의 목적이었다면, 내가 자살 기도를 했을 때와 응급실에 실려 가고, 그리고 그달이나 그다음 달에 약을 지으러 올 때, 그때 나를 붙잡았어야 했다. 내가 치료 의지가 없었을 때, 나락으로 떨어지고 무너져내리려고 했을 때, 그때 그는 나를 붙잡아야 했다. 단지 같은 말만 반복하는 그 처음 1년간이 아니라, 진짜로 내가 위험했을 때, 당장 내일이 이미 무너져내렸다고 믿고 있었고 미래가 불가능해 보일 때 그는 나를 잡아야 했다. 그것이 내 뉘앙스로만 전달되는 것이 아니다. 그는 내가 했던 자살시도를 알고 있었고, 응급차에 몇 번이고 실려 간 것을 알고 있었다.
당신은 내 아버지를 이용했다. 아버지는 당신이 나를 진심으로 걱정한다고 믿었고 나에게 그렇게 말했다. 이 병원은 알코올중독 환자가 대부분이고 그들의 돈과 보험금으로 병원이 돌아간다. 어리숙하고 일 처리 느린 간호사 천지에 부족한 인원으로 인해 환자가 직접 배식을 하고 식판을 들고 배식을 받아야 하는 병원이다. 나는 그냥 알코올중독으로 입원한 게 아니었다. 나는 우울증과 불면증과 극심한 불안증을 앓고 있는 알코올중독자로 입원했다.
그런데 이 병원은 환자 하나하나의 케어를 원하지 않는다. 이 병원 입원실 구석구석 하수구 쥐 떼처럼 침대를 다닥다닥 붙여 그저 잠만 자는 알코올중독자들이 해왔던 대로, 나는 그 알코올중독자 중 한 명이 된 것이다. 약도 같다. 다른 약을 요구하면 의사의 약 처방 과정은 귀찮아진다. 나는 심지어 입원 환자에 한해, 당신이 아닌 간호사가 약을 [대리 처방]하는지 까지도 의심하고 있다. 이게 합법이냐 불법이냐의 문제가 아니다. 나는 당연히 법과 의료계에 대해 무지하고 관심도 없다. 문제는 내가 ‘당신이’, ‘정신과 전문의가’ 약 처방을 한다고 믿고 그것을 신뢰하고 입원을 결정했다는 것이다. 당신은 회진을 돌지도 않았다. 3일째 도대체가 약을 제대로 받은 적도, 설명받은 적도, 수액을 왜 맞아야 했으며 내 소변이 왜 필요한지, 그 주사기 한 병 가득 받아가는 피가 왜 필요한지. 아침마다 왜 피가 필요한지, 나는 거기에 대해서 단 한마디도 듣지 못했다. 특별 취급해달라는 것이 아니다. 나는 모든 환자가 각기 저들 상태에 적절한 약을 ‘담당 의사’에게서, 혹은 간호사에게서라도 섬세하게 처방받고 설명받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했고 그게 병원이라면 당연한 줄로만 알았다. 그러나 아니었다. 이건 완전히 완벽하게 철저하게 사업이었다. 매일 회진을 돌며 입원 환자의 약을 조절하는 시간은 외래 진료를 받으러 온 사람과 상담하는 시간보다 돈이 안 된다(장기적으로 봐도 그렇다). 입원 환자는 입원실에 박혀 있으면 연금이다, 병원이란 건물의 지독하게도 천문학적인 가격의 월세다. 그런데 나는 이것이 의사로서의 직업윤리와 병원의 장으로서 사업이라는 직업윤리가 너무 불균등하지 않은 지, 한쪽으로 너무 치우치지 않았는지 의문이 든다.
문득 며칠 전 폐쇄 병동에서의 그 장면이 생각난다. 말을 못 하는 환자를 다른 환자가 세게 때렸다. 뺨을 때렸는데 퍽 소리가 났다. 피해자는 자기 방으로 도망쳤다. 화장실이자 흡연실에서였다. 그리고 난 그냥 담배를 태우며 보고 있었다. 그리고 얼마 뒤에 내가 담배를 또 피우러 갔을 때, 그 가해자와 간호사는 웃으면서 얘기하고 서로 맞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그 간호사는 다른, 말을 못 하는 환자에게 귓속말로 폭언을 하던 간호사다.
그 장면도 생각난다. 내가 일반 병실로 내려갈 때. 안경 낀 중년의 여간호사가 내 짐을 옮기기 위해 옆에 있었다. 그때 그 병동에서 꽤 정상적이라고 생각되었던 중년 남자가 내 옆의 여간호사를 불렀다. 그리고 눈을 야릇하게 치켜뜨며 ‘간호사님, 오늘,’하고 말하며 자기 옆머리를 의미심장하게 넘겼다. 여간호사는 “안돼 오늘~ 바빠~ 8시까지 일이-” 하고 말했다. 그 여간호사가 링거를 놓기 위해 내 혈맥을 찾으러 손과 팔을 만졌던 것, 그리고 내 오른팔 여자 얼굴 문신에 대해 여자친구냐고 물어본 것, 그 모든 장면이 겹치며 마음속으로 구역질이 치솟았다. 어쩌면 실존을 만져본 것이다. 이끼가 낀 돌을 ‘돌’이라는 관념을 제외하고 서늘하고 축축한 촉수 그 물자체의 섬뜩한 감촉을 느껴본 것이다.
이제는 정말로 당신들을 믿지 못하겠다. 환자와 의사 사이의 유대야 환자가 의사에게 의존하게 만들어 약과 치료 절차를 수월하게 만드는 것에 필요하지만, 문제는 당신이 그 가스라이팅 이후에 돈줄이 되자 그들을(나를) 버린 것이다. 그리고 나 또한 버림받은 것이 느껴진다. 피부로 체감이 된다. 의사 선생, 링거를 맞고 약을 먹어서 알코올을 빼는 작업이 폐쇄 병동에서 필요했다면, 그리고 나를 고쳐줄 의지가 확실했다면 당신은 내가 “여기 너무 스트레스받아요”라고 말했을 때, “그래요? 일반 병동으로 제가 최대한 빠르게 보내줄게요.”라고 답하면 안 됐다. 그게 정말 필요한 작업이었고 나를 치료시킬 목적이 있다면 처음엔 내가 그곳에 머물도록 설득해야 했다. 그러고 난 후 거기에 내가 반대했을 때, 최후의 보루로 일반 병동으로의 이동을 권했어야 했다. 그러나 당신은 그날 사건으로 바빴고, 나를 치료하기보단 그 순간 시간을 벌기에 가장 빠른 문장을 택했다. 나는 그 소파에 가만히 앉아 2시간을 기다렸었고, 면담은 1분도 채 되지 않았다.
당신은 공포증이 있었을 것이다. 코로나 초기에, 하루에 단 몇백, 몇천 명만이 코로나에 감염되던 시기에 안동 성심병원에서 직원과 환자들이 코로나에 감염되었다고 인터넷 기사가 올라온 것을 봤다. 병원 경기가 휘청댈 수도 있는, 아니 어쩌면 그때 아주 조금은 휘청거렸을 사건이었을 것이다. 당신은 그 두려움으로 환자 한 명이 제대로 치료받을 수 있는 기회를 내던졌다. 아니 공포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그냥 애초에 그 정도의 관심이 없었을 것이다. 어쨌든 당신은 바빴다. 나를 위해 2층으로 올라온 것이 아니라 코로나 때문에 2층으로 올라왔다는 것이 확실하게 느껴졌다. 당신 병원 2층에서 코로나가 터진 건 당신 병원의 사업적 측면에서 위기겠지만, 나 또한 인생을 걸고 이 병원에 왔단 말이다. 불가능해 보였던 미래를 아주 희미하게라도 보기 위해 휴학을 내고, 근로 교육자와 조교와 교수에게 내가 정신병자라는 사실이 다 까발려진 채, 근로를 포기하고 휴학을 했다. 일단 들어가면 인식이 나쁘다고 말하기도 부족할 정도로 나쁜 ‘정신병원’에 최소한 3개월 이상 입원을 결심했단 말이다. 입원하기 전에 많이 울었고 많이 생각했다. 그런데 당신은 그걸 내쳤다. 나만의 문제가 아니다, 요양원에 있는 조부모와 지칠 대로 지친 가난한 가장의, 그리고 정말로 금방이라도 무너질 듯이 휘청거리던 나의 한 줄기 희망이었단 말이다.
4년은 정말 길었다. 나에게는. 당신에겐 어떨지 모르겠지만 말이다. 19살부터 22살, 사람들이 가장 아름답다고 말하는 시기다. 나는 그들의 나이가 되어보지 않아 모르겠지만 그냥 횟수로, 내 인생 오 분의 일을, 그 시간 동안(심지어 오늘까지도) 내 마음의 치료를 당신에게 맡겼단 말이다.
나는 치료를 받아야 할 사람이다. 정신과 치료는 약물로는 안 된다는 것을 안다. 의사와의 애착 관계 생성과 상담으로 트라우마를 극복하고 환자가 의식하지 못하거나 감추려고 하는, 심층에 있는 우울증의 원천을 찾아 끄집어내야 한다는 것을 안다. 그러나 나는 이제 그러지 못하겠다. 당신 이후로 나는 찾아가는 모든 정신과 의사들을 대면하자마자 불신하게 될 것이며, 입원을 권유하면 돈에 미쳐있는 사람으로 보게 될 것이며, 의사가 상담을 권유하면 상담 중에 의사가 답변을 더 요구한다거나, 시계를 힐끔거리는 순간 돈에 미쳐있는 사람으로 볼 것이다. 아니 그냥 상담을 권유하는 순간 나는 그 의사를 돈에 미친 사람으로 볼 것이다. 나는 정말 내가 이렇게 되길 원하지 않았다. 당신과 만나기 전으로 돌아가고 싶다. 그때로 돌아가 당신보다 더 나를 잘 속이는 의사를 나의 첫 의사로 만나, ‘이 의사는 내가 진심으로 치료되길 원한다’라고 믿으면서, 행복한 무지 상태로 의사에게 고마워하면서 마음을 치료하고 싶다. 그러나 의사에 대한 불신이 생긴 이상 치료는 불가능하다.
당신을 원망하거나 욕하지 않겠다. 당신은 틀리지 않았다. 내가 이렇게 비극적인 인생을 사는 것도 하나의 삶인 것처럼 그것 또한 당신 만의 삶의 방식일 것이다. 당신은 직업윤리를 제대로 지키고 있다며 나를 욕할 수도 있을 것이다. 나이는 스물둘, 정신병자에 지잡대, 사회하층민 따위가 ‘감히 의사에게, 그것도 원장에게’ 뭐라고 얘기하는 게 헛웃음이 나올 것이다. 어쩌면 이 글을 읽으면서 낄낄대고 웃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것마저 인정한다. 각자의 생각이 다르다. 하지만 내가 원치 않더라도 나는 이 4년을 영원히 기억할 것이고 모든 정신과 의사를 불신하게 될 것이다.
―2022년 04월 07일 10시 50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