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일상

10/4

애매모호 2022. 10. 4. 13:26

진도를 놓친 교양수업과 어떻게 해야할지 모르겠는 중간고사 기간. 매일 떨어지는 것 같은 숨을 간신히 붙잡는다. 그러면 그 숨은 내 머릿속으로 고요하게 맺힌다. 다른 표현을 쓰긴 쓰는건지 모르겠다. 원래 실낱같던 창의력마저도 전두엽이 썩으면서 이젠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고요하게 산책하던 본가에 다시 가고 싶다. 외로울 때 들리던 아버지의 코골이 소리가 그립다. 낮에 같은 방에, 맨바닥 위에 누워 보던 홍상수의 영화들도 그립다. 당신과 내 호흡이 일치하는 순간이 그립다. 내가 그 호흡을 따라가려고 숨을 참던 시간도 그립다. 그런데 이 그리움은 그저 외로움 때문에 태어났다. 당신을 그만큼 사랑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죄책감이 글에 살짝 묻는다. 번진다.
차라리 환각제가 필요하다. LSD가 필요하다. 졸피뎀은 오래전에 동이 났다. 그때도 무너졌었지. 약이 없었다. 웃긴 일이 있었다. 졸피뎀 7개를 포함한 알약 스무 개 정도를 먹고 잠들었는데 개운하게 일어났었다. 그래서 그날 나는 팔을 그었다. 수건 한 장이 온통 피에 젖어있고 눈물보다 빠른 속도로 걸쭉한 피들이 흘렀다. 그래도 그땐 잡아주는 사람이 있었다. 여름이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내가 반 팔을 입은 적이 없으니 말이다. 그 덥고 축축한 방에서 나는 긴 팔 티셔츠를 입었다.
이제는 자해흔을 숨기지 않는다. 내 손등에 있는 문신도 후회되지 않는다. 이 흔적들은 내 외로움의 가속도를 올려준다. 첫 술자리에서, 나에게 관심이 있어야만 보이는 애벌레 같은 자해흔. 공모전에 냈던 소설을 생각한다. 미로들, 이라는 제목이었고 그 시절 눈을 감으면 보였던 형형색색의 역겨운 애벌레들이 촉수처럼 빙글빙글 돌고 있었다. 그 미로에는 입구도 없고 출구도 없었다. 나는 그냥 그 미로와 함께 태어났다.
뭐라도 써야 할 것 같아서 잠깐 써봤다. 문단을 나눌 것도 없지만 그냥 나눴고, 쓰레기 같은 표현도 그냥 남겨놓는다. 기록하는 것이 내 일이었는데 그 초심을 잊어버린 것 같아서. 모순과 추함을 편집하지 말고 인터뷰를 그대로 올려달라던 김심야라는 래퍼가 생각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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