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러므로 진실된 혐오감은 자기 혐오에서 비롯된다고 말할 수 있다. 폭력적인 것들에 대한 거부감 소위 말해 ‘교육된 거부감’은 이차적인 형태라고 말할 수도 없을 정도로 얕을 수 밖에 없고, 그에 비해 자신의 부족함을 느끼게 되는 사건들에 대해서는 깊은 혐오감을 가진다. 그러나 만약 교육된 거부감이 그들에게 진실로 깊은 혐오감을 준다면, 그것은 자아와 교육의 사고활동이 거의 일치한 것으로 보아야 한다. 도덕적인 인간―그것은 인간이 만든, 교육에 방식에 완전히 일치하는 듯 보이며 거의 태초의 기원적인 혹은 종교적인 성격 마저도 완전히 사라진 인간이라고 볼 수 있다. 이런 인간은 폭넓은 사고가 불가능한 인간으로 태어났거나, 만들어진 것이다....
여기까지 쓰고 나는 워드프로세서를 꺼버렸다. 글이 어디까지 나아가야 하는가? 혐오감을 중심으로 열등한 인간과 우월한 인간을 나누어야 하는가? 사고의 폭이 과연 인간 정신의 고도를 정하는 척도가 될까. 인간 정신의 고도가 사고의 폭과 연결되고, 혐오감을 중심으로 연결되더라도 그것이 인간의 우월함을 증명하는 것이 될까?
목이 저려와서 목을 왼쪽으로 꺾었다가 오른쪽으로 꺾었다. 머리를 뒤로 제치려는 와중에 앞에서 책을 읽던 여자 친구와 눈이 마주쳤다. 사실 책은 그녀 자신에 대해서 뽐내는 하나의 화장에 불과했고, 책 위에 스마트폰을 놓고 연예인들의 기사들을 읽던 중이었다. 나는 머리를 그녀에게로 굽히며 “뭐 봐?”하고 말했다. 그녀는 아메리카노의 투명한 빨대에서 입을 때고 “그냥, 연예기사 보는데 누가 자살했데.” “누가 죽었는데?” “R이라고, 래퍼 있는데 오늘 죽었데.” 전까지는 내가 모르거나 여렴풋이 알고 있는 연예인들 중 누군가 죽었겠거니, 하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R’이라는 이름을 듣자마자 나는 깜짝 놀랐다. 그는 내가 꽤 관심을 두었던 음악가였고, 자살할 것이라고 예상하지 못한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대마초도 하고 여친 폭행도 하고, 학교폭력도 하고, 자기 제자까지 야구방망이로 때렸데. 미친 사람이지? 그래서 여론이 갈리나 봐. 잘 죽었다는 사람도 있고, 꽤 능숙하던 음악가가 죽었다는 것에 대한 상실감을 가진 사람도 있고.” 나는 그녀에게 R에 대해서 알고 있다는 사실을 말한 적이 없었다. 내가 처음 들었던 생각은 ‘사람이 죽었다는 기사에서 여론이 갈린다는 게 대체 무슨 뜻이지?’였다. 법치 국가다. 의무된 교육에 대한 순응이 없으면 낙오되는 나라다. 그런데 사람이 죽었다고 잘된 일이라니? 혐오감과 현기증이 뒤틀렸다.
여자친구에게는 “그래?”하고 별로 관심 없는 듯한 척 해 보였다. 그걸로 그 주제를 끝마치고 싶었다. 혐오감에 입에 머무른 밀크티를 뱉어내고 싶었다. 얼 그레이의 박하향과 미끌미끌한 우유의 지방들, 그리고 끈적한 시럽이 서로 조화를 못 내고 있는 것 같았다. “나 피곤한데 집에 가서 안 놀래?” 그녀는 그러겠다고 말했다. 내 얼굴에서 무언가를 읽었을 것이다. 분명히.
내 원룸 침대에서 누워있는 그녀를 뒤로한 채, 책상에서 노트북을 켰다. 그리고 R의 자살에 관한 기사를 찾아보았다. 그것은 진실이었다. 그에 대한 반응들도 살펴보았다. 그것 또한 진실이었다. 잠깐 동안 멈춰있었다. 그가 무슨 죄를 지었는지 상기시키려고 했다. 1 대마초를 피웠고, 2 학교폭력을 했으며, 3 여자친구를 폭행했고, 4 음악하던 제자를 야구방망이로 때렸다. 이것으로 그 죽음을 긍정적으로 보는 것 또한 옳지 않은가? 라고 자문을 하자, 아니 어떻게? 라는 대답이 나왔다. 정말로 그것이었다. 아니 어떻게 사람이 죽은 것에 대한 반응이 반반으로, 긍정과 부정으로 나뉠 수 있는가. 오랫동안 들어가 보지 않은 커뮤니티 사이트에 들어가 보았다. 그에게 폭행당한 여자친구가 한 배우가 경박하게 웃고 있는 사진을 인스타에 아무 말 없이 올렸다. 댓글을 열어보았다. [언니!!! 축하해요!! ㅋㅋ] 뭘? 무엇을 축하하지?
아무리 생각해도 뭔가가 이상했다. 아까 카페에서 적은 혐오감에 대한 짧은 소견에 이 현상을 놓아 보았다. 그가 저지른 비윤리적 성격에 혐오감을 품고 있었던 사람들이라면, 그의 자살이 품고 있는 비윤리적인 성격에 대해 안타까워해야 정상적인 것이 아닌가. 그러나 그렇지 않았다. 그들은 나의 생각보다 유연했다. 마치 시간적 순서가 윤리성을 대변한다는 듯이. 감정의 뒤죽박죽한 뿔들이 윤리성을 대변한다는 듯이. 아니, 나 또한 그들에 대해 혐오감을 품고 있는 것은 자기 혐오에 대한 반증이 아닌가? 나는 진정으로 연예인 S나 G가 죽었을 때, 섹슈얼함을 팔아 살아가던 그들이 죽었을 때, 아주 약간이라도 혐오하지 않았던가? 나는 떳떳할 수 없다. R의 죽음에 대한 긍정적 여론에 대한 혐오감은 애매할 정도로 얕았고, 그것들이 글을 쓰면서 과장됐을 뿐이다. 나는 S와 G가 죽었을 때 느꼈던 혐오감과 비슷한 정도의 혐오감을 품고 있었다. 나도 유연했다. 어떤 정의가 내 머릿속에 들어서 있지 않은 까닭이었다.
인터넷의 모든 여론을 그대로 놔두고 노트북을 닫았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그들을 인정했다. 모두가 혐오에 있어서 유연했고, 감정의 기반은 전혀 존재하지 않았다. 나 또한 그 서순을 따르고 있었다. 내가 그들에게 혐오감을 가지지 말라고 부탁하고 싶은 감정이 든다면, 그것은 내가 교육적인 도덕과 일치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는 그러지 않았다. 유유히 그것들을 생각하지 못하는 곳으로 빠져나왔을 뿐이고, 그 사건이 나에게서 잊히도록 놔둘 뿐이다. 기반이 없는 곳에서 어떻게 그들은 절망하지 않을 것인가, 라는 물음이 당연하단 듯이 튀어나왔고, 매번 그랬듯이 그럴 수 있다는 결론을 내렸다.
자고 있는 여자친구의 얼굴을 손가락으로 툭하고 건드려 보았다. 그러자 그녀가 몽롱한 눈으로 눈을 떴다. 나는 그녀에 비해 큰 몸으로 그녀의 가슴에 들어갔다. 그녀는 나를 안아 주었다. “오빠 왜 울어? 무슨 일이야? 괜찮아, 괜찮아. 그대로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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