왼쪽에는 어린 아들이 있고 오른쪽에는 아이의 엄마가 있다. 그 둘 사이에서 무언가 꿈틀대고 있었다.
그러니까 그 장면을 지켜보는 나의 기준에서 왼쪽은 어린 아들이었고 오른쪽은 아이의 엄마였다. 아들은 엄마를 보고 있었으며 엄마는 아들을 보고 있었다. 그러니까 우리는 마주 앉아 있었던 것이다. 기차였다.
가운데 자리를 띄어놓고 앉았다는 것이 이상하게 생각되었지만, 곧 그 이유를 알게 되었다. 당신들도 알게 될 것이다. 가운데 자리, 허공에서 무언가 꿈틀대고 있었다.
하지만 그것은 실체가 없다, 라고 적으면 거짓이 된다. 형상은 없지만 꿈틀대고 있으니 말이다. 꿈틀댄다고 적으면 그것은 실체가 아닐까.
아들은 바지를 벗어 그의 다리를 내주었고 엄마는 materia를 품었다. 다시 말하지만 꿈틀거리고 있었다.
편지가 멀리 갔다가 다시 돌아오는 순간이었다. 하나의 기조(基調)이지 구조는 아니었다.
그 불타는 화로 안에서 만들어졌다.
지금 내 가운데서도 불타고 있었다. 어쩌면 내면에서 꿈틀대고 있었다. 앞으로 나가면 그건 폭력적이었다.
하지만 위대한 작가들은 앞으로 나갔다.
허공에서 잉태했다.
어머니는 자궁으로 그것들을 모조리 받아냈다. 아버지를 죽인 보람이었다.
탯줄이 도화선이었다.
그렇게 간단한 얘기가 아니다. 집단자살하는 돼지들의 이유를 말해보라.
그것이 내 가운데서 잉태되고 있다. 예수가 집단자살하는 돼지들을 만든 것이 아니었다. 집단자살하는 돼지들이 예수를 만든 것이다.
구덩이로 떨어지는 돼지들을 어머니는 자궁으로 모조리 받았다.
당신들은 지금 보고 있다.
아들 엄마
그 사 이 에 무 언 가 죽 는 다
태 어 나 려 고 하 는 중
나 또한 따라서 받아냈다.
혹시 당신들, 감히 잡으려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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