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문학

담배 가게 1 (소설)

애매모호 2023. 11. 15. 01:33

 담뱃가게의 주인은 가게를 넘긴다고 말하면서도 가게를 넘기지 않았다. 늦게까지도 불을 켜놓는 원룸들의 불빛이 다 꺼질 무렵, 내 담뱃갑에 담배는 동났고 나는 그 담뱃가게에 담배를 사려고 밖으로 나왔다. 낡은 가게들과 기껏해야 3층 남짓인 원룸 오피스텔만 있는 이 동네의 불들이 모두 꺼져 있었다. 마침 소나기가 거세게 떨어진터라 건물 사이의 골목들에는 물자국과 안개가 가득했고 단지 드문드문 나있는 가로등과 담뱃가게만 불이 켜져 있었다. 옆으로 미는 오래된 문 앞에 담배라고 적혀있는 그 담뱃가게는 안으로 들어가면 꽤 잘 정돈되어 있었다. 다만 그 구석으로 들어갈수록 어두컴컴했다. 와인바처럼 오른쪽으로 길게 늘어선 테이블의 끝자락으로 들어가면 주인이 불을 끄고 테블릿으로 영화를 보고 있었다. 그 구석, 그러니까 입구의 맞은편에도 큰 유리창이 있었는데 안개 때문에 흐려서 밖이 보이진 않았다. “말보루 미디움 하나 주세요.” 테블릿을 지켜보던 서른쯤 먹은 여자는 하얀 셔츠와 슬랙스를 입고 있었다. 머리는 부스스했다. 꽤 오랜 시간 가게를 지키고 있던 것처럼 보였다. 아마 아르바이트를 쓰지 않으니 거의 모든 시간을 이 담뱃가게 안에서 보냈을 것이다. “말보루 미디움이 없어요. 담배 가져다주는 회사랑 싸웠는데, 두 달쯤 밀린 담뱃값을 안 줘서 그래요. 뭐 어쩌겠어요. 돈이 없는데. 그래서 장사를 접는다고 말씀 드렸었구요. 그때는 이유까지 말하진 않았지만. 말보루 말고 다른 담배도 피워보세요. 저기 구석에 홍대에서 발견한 잡스러운 물건을 파는 가게에서 20미리짜리 담배도 구해 왔거든요. 살 땐 5천원에 샀죠. 교통비만 포함해서 6천원에 드릴게요. 살거에요?” 그녀는 까만 담뱃갑을 보여주며 말했다. 앞에는 ‘kirlin’이라고 적혀 있었고 그 외엔 아무런 표시가 없었다. 비닐로 포장되어 있지도 않았다. “대마 해봤어요?” “아니요” “이거 피면 대마초 피는 느낌이 들어요. 담배를 처음 폈을 때 느끼는 그 황홀감이 담배로 느껴진다니까요? 진짜에요. 이것도 몇 개비 피면 그런 기분은 없어지지만 말이에요.” “6미리짜리 아무거나 주세요.” “그럼 그냥 이건 가져가세요. 선물이에요. 6미리 짜리는 한 보루 맞죠? 그러면 이제 안 오겠네요. 마지막이에요. 그러니까 선물해주는 거에요.” “말보루 미디움이 없으니까 3갑만 살려구요. 3갑만 주세요.” “그래도 마지막 일거에요.” 그녀는 그 검은 담배와 말보루 골드 3갑을 골판지로 된 작은 종이백에 담아서 나에게 줬다.

 밖으로 나와서 검은 담배를 하나 꺼냈다. 담배를 만 종이까지 검은색이었다. 담뱃가게 주인 말대로 몽롱한 기분이 들었다. 처음 담배를 폈을 때의 그 기분. 잠깐 몽롱해져서 일어나지 못하고 비틀대다가 담뱃가게 문에 등을 부딪혔다. 그리고 앉았다. 그러자 두통이 오기 시작했다. 벽을 잡고 담뱃가게와 그 옆의 원룸 건물 사이에 토를 했다. 담뱃가게의 문을 다시 열고 들어가 물이 있느냐고 물었다. “그게 좀 쎄죠?” 그녀는 정수기에서 물을 받고 자기 가방에서 아스피린을 꺼냈다. 그리고 우리 사이에 있는 책상에다가 그것을 두었다. 나는 물을 입에 머금고 가글을 하고 담뱃가게 앞 거리에 뱉었다. 그리고 아스피린 두 알을 물과 같이 삼켰다. “좀 어지럽네요.” 그녀는 내 눈을 보면서 살짝 웃었다. “두통은 아스피린을 들고 다니면 돼요. 쾌락은 그대로 느끼고 고통은 누르면 되죠.” “물은 가지고 다니기 귀찮으니까요.” “그렇네요그녀는 또다시 웃었다. “마지막이 아니었죠?” “그렇네요대답하면서 그녀는 내 팔을 쓰다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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