벽지의 #모양의 각질들이 떨어지고 있었다. 분명했다. 그것들을 지켜보면 그 문양이 먼지처럼 떨어져 내렸다. 가끔씩, 눈이 눈알 속으로 떨어지듯이, 그 모양이 내 앞으로 다가와서 나를 놀라게 했기에 벽지에서 그 모양이 떨어진다는 것은 더욱더 확실했다. 나는 그것을 꿈에서도 보았다. 그 문양이 검은 허공에서 멀리 떨어져 있다. 그리고 내 초점은 당연히 그 하얀 문양 속으로 빠져들어가고 그때 그것은 자신의 형체를 뒤틀어가며 갑자기 내 눈앞에 다가왔다. 그럴때면 나는 눈을 뜰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것은 꿈에서만이 아니었다. 나는 당연히 그런 악몽을 꾸면 울어버리곤 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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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이 우는 나를 보고 놀라서 불을 킨 어머니에 의해 비춰지곤 했고, 그것이 다시 떨어지곤 했으며, 그것이 다시 다가오곤 했다. 나는 징그러운 ######들 때문에 눈을 감는다. 눈을 감자 꿈의 인상이 다시 떠오르며 ################ 나는 정신을 잃을 것만 같았다. 왜 그렇게 우냐고 어머니가 물었다. 아버지도 이해할 수 없는 표정을 지었다. 얘가 좀 예민해서 그래. 예민한게 문제가 아니었다. 그것들이 진짜로 떨어지고 내 앞으로 다가오는 것이 문제였다. 하지만 호흡 곤란도 오지 않고, 기절하지도 않았다. 그것의 표현은 그저 울 뿐이었다. 애가 진짜 왜 이러지? 괜찮아. 괜찮아. /엄마제발저기있는저기저문양들을치워주세요그게저한테다가오잖아요모든게무너지고있잖아요그것들이제눈에보이잖아요 제발여기서저를데리고나가주세요그게무서워요그것이뒤틀리고확대되고이상하고번들거리고입체적이고마치형이상학적으로보이잖아요/ 실제로 뱉은 말은 무엇이었을까. “엄마 무늬가 무서워” 정도였지 않을까. 그러면 엄마는 나를 밖으로 데리고 간다. 어둠 속이다. 다시. #####################################
벽지만 무너져내리고 아무것도 무너져내린 것이 없다. 그저 약간 모호해졌을 뿐이다. #보다 어머니는 덜 들렸고, 아버지는 덜 보였으며, 누나는 덜 존재했다. # 가운데 구멍에 심연이 있었다. 거기로 빠져들어가다가 깜짝 놀라서 덜덜 떨었다. 얘야 좀 자자. 어떻게 계속 이러니. 할아버지는 내 배꼽에 #을 새겨주셨다. 그것과 친근하면 꿈을 꾸지 않는다는 이유였고, 그것이 어떤 한자의 뜻과도 관련이 있었고, 할아버지가 불교 신자이기도 해서였다. 그것은 빨간색 사인펜으로 새겨졌다. 그것들이 지워지고 또 #의 꿈을 꾸게 되면 다시 그것을 새겨주곤 했다. 하지만 무슨 효과가 있는 것은 아니었다.
단지 나는 여기서 내가 생각해도 이상한 트라우마의 느낌을 아직까지도 간직하고 있음을 말하려고 했다. 그 야릇한 느낌의 인상은 지금 성인이 된 지금까지도 느끼고 있다. 그것이 확실히 무너져 내렸던가? ‘문양’이라는 것에 무슨 의미가 있을까? 어린 내가 생각하기론 실용적이지 않은 문양은 이상하다라고 느낀 것일까? 아니면 그 벽지 앞에서 어떤 무서운 일이 일어났기 때문일까? 아직도 그 벽지는 집에 남아있다. 그것에 받은 인상은, 그 오감과는 다른 차원에 있는 그 살떨리고 야릇한 감각은 나를 다른 사람들과 구분해주는 열쇠가 될 수도 있지 않을까. 불이 꺼진 방에서 햇빛이 윤곽들을 드러내고 옆에 앉으신 할머니와 멀리 떨어져 앉으신 할아버지가 있다. 이불이 있고 할아버지 옆에는 아주 크고 까만 벽장이 있다. (그것 또한 여전히 집에 있다.) 할아버지는 그 위에서, 내가 절대 닿을 수 없는 높은 곳에서 과자나 사탕을 꺼내 주셨고 나는 그것을 좋아했다. 할머니는 좀 어두웠고, 할아버지는 좀 우둔했다. 기억이 너무 야릇하고 희미한 느낌이다. 그것이 내가 꺼내 놓을 수 있는 전부다. 부모의 성관계를 목격한 남매는 할아버지에게 달려가서 일러바쳤고(그것이 그 방이다), 할아버지는 들은체 만체 하면서 대충 대응하셨고, 그 후에 어머니는 남매를 혼내셨다. 그것이 어머니에게 큰 치욕은 아니었을까. 침묵하고 있던 아버지는 어디 있었을까. 혼내는 임무를 조용하게 어머니에게 넘기셨을까. 아버지는 나가서 바람을 피웠을까. 어머니는 왜 소주를 숨겨서 드셨을까. 나는 왜 누나랑 부모 놀이를 했을까. 왜 그 바비 인형은 내 기억속에 남아 있는가. 왜 그때 그 방의 핑크색은 나에게 남아 있는가. 그런데 왜 그 중요한, 엄마에 대한 증오의 기억과 누나에 대한 증오의 기억은 확실하게 남아있지 않는가. 내가 책임을 져야하는 그 증오에 대해서는 왜 근거가 남아있지 않은가. 내가 짊어질 수 없을 정도로, 무겁다고 할 수 없을 정도로 무거워져 버린 그 증오의 가림막을 보면서.
나는 #에 대한 관련된 인상들을 어느정도 적어놨다고 생각한다. 그것을 다 내놓기엔 너무 난잡하고 과장되어 있고 정확하지 못하며, 너무 많다. 이것이 적절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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