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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체를 기다리면서

애매모호 2024. 12. 16. 03:20

바깥에서 볼 땐 어두컴컴해서 항상 문이 닫혀있다고 생각하던 교회 소유의 카페가 운영한다는 것을 알고 왔다. 커피 맛은 모르겠지만 교회 카페는 늘 친절해서 좋다. 크고 반짝이는 트리, 작은 트리가 있고 빈 선물 상자가 인테리어 되어있다. 밖에선 어두컴컴해 보여 영업을 하는지조차 구분하기 힘들던 카페의 조명 상태는, 안으로 들어오자 외부의 햇빛을 받아들이는 자연스러운 형태를 만든다. 햇빛이 구름에 막혀 잠시 어두워졌다가 그 구름이 흘러 지나가면 예쁜 주황빛이 창가 앞을 따스하게 만든다. 실제로 창가에서 맡는 조명은 피부에 신경을 집중해보면 따뜻하기도 하다. 2000원 정도 하는 아메리카노와 화장하지 않고 동네에서 친숙하게 보이는 옷차림을 하신 할머니 바리스타가 맘에 든다. 단지 하나의 단점이 있다면 손님이 나밖에 없어서 할머님을 불편하게 만들지 않을까 하는 염려뿐. 캐롤이 잔잔한 피아노 소리로 느리게 흐르고 있다. 서로를 인식하고 있지만, 그 마음속엔 약간의 긴장감만 있을 뿐, 그 이상이나 그 이하의 어떤 감정도 없다는 것. 당신은 성경 공부를 하고, 나는 글을 쓰고 있다는 것.

글 초입에 다짐을 써놓았다가 지웠다. 하루에 삼천 자를 쓰겠다는 다짐이었는데 그걸 못 지킬 것 같았다. 차라리 시간을 정해놓고 써야 한다고 생각했다. 한 자, 한 자, 정성 들여 쓰는 방법을 배우기 위해서인데 그것조차 좋은 방법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주제 하나를 들고 여기에 오는 것. 힘들지 않을 때까지만 쓰는 것. 지금은 그게 가장 좋은 방법인 것 같다.

 

솔직히 지금 만들어놓은 규칙들도 언젠가가 되면 버거워질 때가 올 것이다. 하루에 세 번, 5분씩 집안일을 하기, 헬스를 사흘에 한 번씩 가기, 책을 5분 이상 읽기. 그리고 술을 먹지 않기. 자제력도 동이 난다는 사실을 책에서 읽었다. 나에겐 술을 참는 것도 자제력이 상당히 소모될 일일텐데, 처음부터 욕심이 생겨 거기에 무엇을 더하고 더하고 하는 것은 좋지 않은 일이라고 판단했다. 작은 일을 하는 것을 실패하지 않고 오랫동안 유지하는 것에 목표를 두어야 한다.

술만 먹지 않는다면 내일도 평화로울 것이다. 이상한 디엠을 보내거나 전화를 해서 이상한 말을 하거나 할 일도 없고 민체에게 상처를 주지도 않을 테니까 말이다. 그리고 다음 날엔 상쾌할 것이다. 하지만 자제력의 문제인지 스트레스를 도저히 참을 수가 없다. 그래서 스트레스 해소를 위해 뭔가를 해야 한다. 하지만 일을 할 수는 없고, 사실은 하고 싶지 않고, 스마트폰을 만지는 것은 에너지가 소모되지 않는다. 그래서 뭔가 생산적인일을 해야 한다. 그러나 여기에 규칙들을 정해버리면 그것은 다시 내 자제력을 상실시켜 더 많은 스트레스를 안겨줄 것이다. 자제력은 바닥으로 떨어지지만, 스트레스는 천장이 없이 올라간다. 고통스러운 상태에서 담배를 피고 30분을 참아본다.

 

내가 외부적인 일로 무언가를 쓸 필요는 없다. 그러나 내가 무언가를 쓰려고 하는 이유를 생각해보면, 내가 칭찬받고 하고자 했던 일이 쓰는 일이기 때문에 그에 대한 미련이다. 하지만 단지 그 명분만을 가지고는 내가 쓰는 이유를 충분히 뒷받침해주지 못하여 더 많이 쓸 수가 없고, 쓰기의 가치도 단지 미련이 되기 때문에 너무 처량한 행동이 되어버린다. 그래서 나는 내가 쓰는 이유를 이렇게 정한다. 나는 언젠가 반드시 써야 하는 것을 제대로 쓰기 위해 계속해서 쓴다. 누군가에게 보이거나 보이지 않거나, 반드시 써야하기 때문에 쓰기를 하는 날이 올 것이라고 생각해본다. 이 말이 나에겐 꽤 그럴듯해 보이는 것이, 어떤 것을 다시 기억하는 것, 그리고 그것을 전달하는 것을 위한 최선의 방법은 사진이나 영상, 그림이 아닌 글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재기억과 전달은 언제나 약간의 풍화가 있기 마련이다. 그렇기에 최고가 아닌 최선의 방법이다.

아직은 재기억을 위해, 혹은 전하기 위해 쓰지 않을 것이다. 나는 내 인생을 남기는 것이 나의 사명이라고 여겼지만, 그것은 타인에 의지에 의존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유명하고 좋아하는 작가의 자서전 한 권도 읽어본 적이 없는 내가, 내 삶을 최대한 남기겠다는 것은, 그리고 그게 나의 사명이라고 생각한다는 것은 오만이라는 걸 깨달았다. 다 스러져가는 삶을 산다. 대부분에게 힘든 게 삶이다. 좋은 대학을 나와 좋은 직장을 다니며 제네시스를 타고 다니는 저 사람도 인생의 3분의 2 이상이 타인을 위한 노동으로 이루어져 있다. 기계적으로 박스에 물건을 담는 공장 직원과 깔끔한 자리에 컴퓨터 앞에 앉아 업무를 보는 대기업 사무직 직원은 3분의 1이 채 안 되는 시간 속에서 서로를 비교할 뿐, 나머지 시간은 자신이 원하지 않는 어딘가에 묶여있을 뿐이다. 민체가 퇴근하고 거의 도착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