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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의 시간에 글을 쓴다. 말이 안 되는 글이다. 숙취 때문에 머리가 조금 아프다. 듣지 않아도 되는 강의다. 머리가 아픈 것이 맞을까. 아니 좀 답답하다. 냄새 때문에. 알바비를 전부 술에 들이 붇는다. 나와 소원해진 형은 아예 나와의 관계를 끊어버리려고 하는 가 보다. 버려지는 건 익숙하지만 익숙하다고 해서 아프지 않은 적은 없었다. 나와 할 말이 없어서 끊어져 버린다는 것. 나와 같이 얘기하면서 웃었던 적이 몇 번이나 있을까. 내 진정한 친구들도 내 자존감을 깎아 먹을 때 말고는 웃었던 적이 몇 번이나 있었을까. 필력이 쓰레기 같다고 말하는 것도 이젠 자기 반복이다. 억지로 쓴다. 향수의 잔향과 옷의 눅눅한 냄새. 어젯밤 늦은 수음의 냄새와 맥주의 알딸딸한 냄새가 난다. 배려하면서 쓴다는 것은 무엇일까. 내가 전부 다 써버리고 첨삭을 과감하게 해버리는 것. 그것이 이상적인 글인가. 아니면 애초부터 새로운 표현을 사용해야하는 것인가. 늘 주제는 빙빙돌기 때문에 쓸 글이 없다. 돈 얘기만 가득한 힙합 가사들처럼 말이다. 그래도 나는 글을 쓰는 사람으로서 그들을 미리 넘었어야 했다. 새벽 7시까지 마신 것 같다. 맥주를 홀짝거리며, 알바를 하고 술을 먹자고 결심하자 밤 12시에 알바를 시작했고, 천원만 남기고 모든 것을 다 사용해버렸다. 익명의 바다에서 쓸 곳 없는 글을 쓰고 누구인지 알 수 없는 말들에 상처투성이로 무너져내리고 그 와중에 나를 재구성해서 만들어 출품하는 날의 연속이다. 익명들 속에서 그만 벗어나야 한다. 그러나 다들 익명투성이 속에서 자신을 숨기고 활동하고 있는 것 같다. 에브리타임에 올라오는 글들은 나를 찌른다. 이 모든 인간이 혐오와 섹스에 미쳐있다니, 그 극심한 모순, 이태원 참사에 조금도 안쓰럽지 않았던 이유가 그것이었던 것 같다. 쓸 글이 남아있었구나, 내 익명 커뮤니티 생활과 이태원 참사에 대한 글. 그들은 그렇게 글을 쓴 것이었다. 매일 같이 쓰고 소재가 나오면 그것을 기반으로 글을 쓰고 거기에서 이어진 글을 실타래처럼 이어가며 적었을 것이다. 그 실타래를 다시 풀고 다시 짜 나온 것이 그들의 작품이었다. 술을 그만 마셔야 한다. 이제는 정말 그만 마셔야 한다. 약에 취해서 누워있더라도 그렇게 살아야 한다. 이미 한계를 넘어 버렸지만 이제라도 조금씩 되돌려 놓아야 한다. 뭘 위해서 돌려놓으려 하는가―가족을 위해서. 살아있는 동안 모든 순간을 생생하게 체험하기 위하여. 나태함과 외로움을 끝의 끝까지 느껴보기 위하여. 다른 사람들이 느껴보지 못한 것이고 나만이 경험할 수 있다고 해도, 다른 사람들이 모두 느껴본 것이라고 해도, 그걸 적을 사람은 나밖에 없다고 믿는다. 그것은 내가 22살 남자라는 것을 믿는 것처럼 필연적인 믿음이다. 그것이 없으면 도저히 살아갈 수 없으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