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

GongGongGoo009 /공공구/ㅠㅠ/EP

애매모호 2022. 5. 4. 13:37

앨범 커버

 

 달갑다. 이 한마디를 쓰기 위해 꽤 오랜시간 기다렸다. 그러나 즐거운 기다림이었다. [회색단지]를 낸 지가 3, 4년 정도 흘렀음에도 말이다. 

 

 왜 즐거운 기다림이었는가?―그가 사운드 클라우드에서 냈던 음악(냅둬, 다시 또, 철이 들면, 사춘기, 모든게 귀찮아지면-https://soundcloud.com/nanemoda)들이 예리한 퀄리티로 쏟아져 나왔기 때문이다. '사춘기'의 나른하지만 선명한 이미지 구성과 '다시 또'의 날카로움은 '회색단지'라는 명작을 낸 후에도 아직 그 수많은 청각적, 문학적 감각들을 감추고 있음을 드러냈다. '다시 또'의 뜨거운 분노, 혹은 치열함은 가사의 차가운 날카로움과 호각을 이룰 정도로 날이 서 있었다. 이는 단순히 국내 래퍼를 너머 어느 리릭시스트들을 보더라도 발견해내지 못한, 단연코 한국 음악문화계의 가장 기대되는 원석이었다.

 그는 전 세계 예술적 트렌드인 '우울감, 정신병'을 그저 그 흐름에 맡기지 않았다. 회색단지에서 다른 힘이 들어간 트랙(원동력 등)에 비해 '잘 지내'가 대중적으로 성공한 모양을 보면 대중이 그에게서 요구하는 모습은 그가 보여주는 '아른거리지만 선명한' 이미지 구성 능력이었다. 그러나 그는 대중적으로 선호받던 가사에만 집중한 것이 아니라 완전히 자신의 문학적 세계로 빠져들었다. 그렇게 중간 단계에서 나온 '다시 또'가 음악계 내에서 보여준 문학적 성취는 가히 감탄스러웠고(어쩌면 반항스럽기까지 했다), 리스너들의 기대감을 한층 올렸다.

 그러나 이것으로 그의 앨범을 기다린 시간이 '즐거움'이라고 표현하기에는 부족할 것이다. 방금 말했듯 그의 사운드클라우드에서 올라온 트랙들(2018 휴지통에 회색단지 이후의 믹스테잎이 전부 들어가 있다)은 단지 '기대감'이라는 복합적인 감정 중, '그의 실력을 제대로 드러내는 것'만의 기대치를 올렸기 때문이다.

 

 그러면 '즐거운 기대감'은 어떻게 이루어졌는가. 그건 그가 음원사이트에 정식으로 올린 음악을 들어보면 알 수 있다. 비교적 평탄하지만 이미지 구성능력을 떨어뜨리지 않았던 '정릉'. FRNK가 협력한 더블 싱글앨범 '생각', 피처링을 제대로 활용한 더블 싱글 '공간', 난해해지기 시작한 동시에 어떤 경계를 거쳐가고 있다고 리스너들이 느끼게 만든 더블 싱글 '11월', 그리고 [ㅠㅠ]가 나오기 전 마지막 싱글 '가는 길에' ― 이 모든 음악들이 공공구가 더욱 성장하고 있다는 신호를 리스너들에게 줬고, 그것이 즐거운 기대감으로 변했다. 더블 싱글 앨범들은 무조건 첫 트랙은 날카롭고 강렬한 가사들이, 두 번째 트랙은 나른하고 몽롱한 가사들로 이루어져 있었는데, 이는 표면적인 '구성'을 신경쓰는 것을 너머―개인적으로―리스너들이 기대하고 선호하는 음악이 뭔지에 대한 사전조사로도 보였다.

 그러나 '11월'에는 음악적인 완성도라고 해야할지, 너무 낯선 사운드를 많이 썼다고 생각되는 지점이 많았고 때문에 난해하다고 느꼈다. 댓글을 보면 이 싱글 앨범을 기점으로 리스너들 사이에서 약간의 불안감도 싹텄다. 그가 '대중 음악'을 넘어 더 마이너한 곳으로 가려고 하는 징조로도 보였다. 그러나 음악을 계속해서 반복해 들으며 그가 제시한 낯선 사운드가 차츰 귀에 익어가면서 그가 하고 싶어하는 음악의 방향성이 보였고 '가는 길에'에서는 그의 앨범을 들을 준비가 확실히 되어있었다. 그의 앨범을 듣기 전에, 그의 날카로운 가사들을 듣기 전에,  우리에게도 그에게도 그가 준비해 온 작품 세계에 대한 이해가 필요했던 것이다

 

 [ㅠㅠ]에서 공공구가 구성하고자 한 작품 세계는, 그의 믹스테잎과 초창기 음원사이트에 드랍된 싱글들에서 발견된 '날 선 기괴함'이 첫 번째였고, 두 번째로는 후반기 싱글들에서 나타난 사운드적 '패러독스'다. 사운드적 패러독스라니, 그것이 어떻게 가능한가?―인트로, 1번 트랙 [괴물]에서는 담담한 듯한 여성의 나레이션이 장을 연다. 그러나 단순히 단어, 혹은 문장 전달을 위한 나레이션이 아니다. 그녀의 목소리에는 분명하게 냉랭함이 느껴지고 이것은 나레이션이 음악 속으로 들어왔음을 암시한다. '큰 따옴표'와 같은 나레이션에서는 감정이 들어있는 나레이션임에도 그저 문자를 읽을 뿐인 일차원적 독백이라는 모순적 장치를 활용했다는 점에서 둘 사이의 은유적 간격을 벌리고 이는 기괴함을 탄생시킨다. 이 기괴함이 사운드적 패러독스다. '진짜가'라는 동어 반복은 이미 말해졌던 단어를 두 번 더 반복시킨다. 감정을 담고자하는 나레이션에서 차가운 되돌리기를 실행하는 것이다. 이 세세한 시도 모두가 앨범 극초반부터 기괴함으로 인한 긴장감을 서서히 고조시킨다. 그리고 외국인 여성이 등장하여 영어로 나레이션을 다시 진행한다. [Oh hello-오 안녕/and why-그리고 왜/Why is everything meaningless-왜 모든 게 의미 없어?] 뜻이 동일한 나레이션이 다른 언어로 반복되는 이 진행은 단순한 나열이 아니라 한국어 특유의 뉘앙스 특성을 극대화 시킨다. '이 언어권의 특성은 이러할 것이다' ― 니체가 말한, '독일어는 (문체적으로) 느리기 때문에 사상도 그 언어적 특성에 따른다'. 혹은 '특수한 민족은 주어를 표현하는 언어가 거의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자아"의 개념이 많이 약화되어 있어 이는 철학에서도 나타날 것이다' 라고 하는, 이해는 되지만 직접 체험해보지 못한(혹은 미처 '우리 언어'로 인식하고자 시도하지 못한) 우리 고유의 언어적 특성을 급격히 재인식하는 것이다. 앞서 적었던 나레이션 외에 [So i'm meaningless too/I don't mean nothing]에서의 영어로 느껴지는 뉘앙스와 한국어로 느껴지는 뉘앙스는 감정의 고조가 앞서 적었던 나레이션보다 거의 일치한 정도로 올라왔지만 확실히 다르다. 그리고 [또 나만 잘못했구나 알겠어 잘 가 ㅃ2야] 라는 브릿지 혹은 훅에서 첫 번째 벌스로 넘어가는 과정 역시 가벼운 단어 활용과 무거운 단어의 활용[잘 가 ㅃ2야/난 못해 ㅃ2야/너와 살던 집에서 쫓겨나고 집에선 쫓겨나듯 독립했어/우리가 우린 걸 까먹어 보니 넌 나를 지워버렸으니], 그리고 그 감정선이 급격하게 틀어진다는 점에서 짧은 시간 내에 혼란스럽게하고, 기괴하게하며, 역설적으로 느끼게 한다. 두 번째 트랙 [돈 가져와]에서는 비트가 3번 이상 바뀌고, 돌아오기도 했다가 다시 바뀐다. 그 사이에 자잘한 변주는 수도 없이 많다. 총 소리/체인 소리/딥한 베이스/이펙트가 짙하게 깔린 신디사이저/심지어 코러스(백 보컬/허밍)까지 등장한다. 그러나 이 변화들과 다양한 소리들은 적절한 중용을 이루어 내 표현하고자하는 기괴함만을 남기고 '생경함'을 느끼게 할 정도로 심하게 튀어버리지는 않는다. 

 이런 앨범의 특성상 이목을 잡아끄는 곡들은 오히려 변주가 심하지 않은 타이틀 세 곡이다. [산책/헤쳐모여/집중] 이 세 곡들은 최대한 이질스럽게 느껴지는 소리들을 축소하고 변주를 최대한으로 줄인 방식으로 다른 곡들에 비해 대중친화적이다. 하지만 그저 공공구의 음악을 많이 들어보지 않은 대중들을 겨냥한 곡들은 아니다. 헤쳐모여, 집중은 앨범의 유기성 차원에서, 그리고 서사 방식에서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주변 인물에 대한, 혹은 2, 30대 시점에서 사회적 환경을 묘사한 곡인 '헤쳐모여'는 공공구가 사회를 감상적으로 바라보는 시점에서 결론을 냈고(결론이 없는 게 결론이다, 그러므로 문제의식은 앨범 끝까지 멈추지 않는다.), {괴물}에서 {나방}으로 진화하는 모습, 그리고 그 {나방}의 절정 형태인 [집중]은 현재 공공구가 가져야하는 태도에 대해서 결론을 내렸다.

그렇기에 남는 곡은 [산책]이다. [산책]은 영화에서 쓰이는 기법이자, 요즘은 음반에도 자주 사용되는 '플래쉬백' 기법을 사용한다. 동거하던 연인과 헤어지고 난 뒤 무기력해진 자신과 자기 비하를 계속해나가는 무거운 트랙들 후에 피로감을 위해 한 번 쉼호흡이 필요한 시점이었고, 이 [산책]으로 앨범 내에서 감정의 낙차의 간격을 높게하여 다시 그 기괴함을 만드는 것에 성공했다. 그러나 플래쉬백, 이라는 기법과 그 트랙을 그가 '행복했을 때'를 주제로 한다는 것은 꽤나 위험한 방식이다. 앨범의 유기성을 위해 필요하다지만, 이 곡의 힘이 너무 빠져버리거나, 지나치게 '들뜨는 기분'으로 트랙을 만들면 이 기법이 주는 장점을 모두 뒤엎고 오히려 뒤의 트랙에 뒤한 신뢰감을 떨어뜨려 긴장감과 흥미가 완전히 식어버릴 수 있기 때문이다. 그 점을공공구는 짧은 나레이션 샘플링으로 해결했다. [행복하다/살맛난다] 가사 자체도 리스너 입장에서 너무 감상적인 인상을 주어 앨범 전체에서 이탈시키지 않고, [영어로 괜히 love/한국어론 간지러워]에서 뒤에 나올 라인인 [그래도 네가 좋아]의 힘을 한 단계 빼는 데에 성공했고, [그래도 네가 좋아]는 자칫 위험한 감정선까지 오를 수 있었으나 바로 그때 [행복하다/살맛난다]라는 샘플링이 감정의 고조를 멈추고, 기괴한 앨범 내에 있는 트랙이라는 것을 재인식 시키고, 그리고 사운드적 쾌감을 더한다. 이는 이와 유사한 기법을 사용한 다른 앨범들과 비교했을 때, 공공구가 어휘와 샘플링의 활용에서 얼마나 감각적인 지를 알 수 있는 부분이다. 

이는 마지막 트랙인 [ㅠㅠ]에서도 나타나는데 아웃트로로 보이는 구간에서 청년실업률과 청년고독사, 그리고 집값 상승세에 대한 뉴스의 샘플링이 등장하고 그것은 느린 현악기만 등장하는 bgm위에 깔리는 듯한 느낌으로 제시된다. 그리고 곧바로 뒤에 비트가 어두운 분위기로 전환되면서 끝나기는 하지만, 이는 너무 흔한 방식이고 너무 무난한 결말과 그에 따른 평범한 여운을 준다. 그러나 그 어두운 비트마저 끝나고, 작업 현장의 밝은 소리들, 웃으며 엔터를 누르면 되냐고 묻는 여자, 앨범이 끝나자 환호를 하는 몇몇 남자가 어두운 분위기도, 그저 밝은 분위기도 아닌 그저 일상의 층위로 끌어올려 앨범의 마지막을 환기시킨다. 공공구가 제시한 이 마무리 방식은 아주 다층적인 여운을 준다.

 

 마지막으로 [나방]이라는 핵심 키워드에 대한 해석과 더불어 주제의식에 대한 해석도 열어두기로 한다. 단순한 틀 [자책하고 자기파괴를 일삼던 괴물의 모습에서 사회적인 곳으로 시선을 돌리고 그것을 비판하는/자신의 예술적 성취를 위해 힘쓰는/유행하는 추의 미학이라는 점에서 만들어진 메타포(화려한 무늬를 띄고 날아다니지만 자체의 이미지를 생각했을 때 추하고 불쾌하게 느껴지는 점)] 정도는 정해놓고 이 은유의 해석을, 앨범을 다시 들으며 넓혀가는 것도 즐거운 일이 될 것 같아서였다. 앞으로 몇 년 동안은 계속해서 들을 명작이기 때문이다.

 

[GongGongGoo009 /공공구/ㅠㅠ/EP] 앨범은 소량으로 인스타로 판매했지만 지금은 재고가 없는 상태다. (추후에 재고가 생긴다면 공공구 인스타를 통해 구매할 수 있다(https://www.instagram.com/gonggonggoo009/))

[북극곰] 트랙에서 나타나는 '북극곰'은 실제 인명이다. 인터뷰에서 감사를 보내는 사람들 중 북극곰에 대한 언급이 있다―(https://hypebeast.kr/2020/2/streetsnaps-gonggonggoo009)